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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커피향기

사람을 찾아서

상큼한 김선생 2009. 11. 19. 23:02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을 찾아서 집을 나섰다. 바에 가고 싶었다. 술도 마시고 싶긴 했지만 바텐더와 대화하다 보면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돈이 얼마 없다. 돈이 있다고 해도 오후 5시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결국 나는 카페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가는 카페들은 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바가 길게 있는 F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할까? O카페는 너무 멀다. 가장 가까이 있는 I카페 가기로 결정했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걸어갈까 하다가 추위 속에서 30분 이상 걷고 싶지는 않아 버스를 탔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빨랐다. 버스를 기다리고 갈아타다 보니 더 오래 걸렸다. 30분이 걸려도 도착은 커녕 몇 정거장이나 더 남았다. 좀 추워도 걸어갈 걸 괜히 버스를 탄 모양이다.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과 함께 외로움도 밀려왔다. 가면 마음이 좀 괜찮아질까?

한마음 병원 직전 정거장에서 내렸다. 생각보다 춥지 않다. 그냥 걸어올 것을… 길을 건너고 I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걷다 보니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몇 있다. 빠르다. 자전거 탈 걸 그랬나? 후회는 소용 없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가볍게 뛰어 갔다.

가을의 촌동네 냄새가 났다. 나무타는 냄새, 뭔가 살짝 썩는 냄새. 불쾌한 냄새는 아니었다. 어릴 때, 집안 일로 촌에 갔을 때 맡았던 그 냄새였다. 이건 김녕에서 맡았던 냄새, 이건 봉개서 맡았던 냄새. 세세한 추억까지 떠오르진 않았지만, 냄새에 젖어 천천히 걸었다.

어느새 I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갔더니, 역시 모두 아는 얼굴들이었다. 인사를 하고 바에 앉아 주는 물을 마시고는 뭘 마실까 고민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마실까? 아님 하라? 아니면 예멘 모카 마타리를 마실까? 뭘 먹지 망설이다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언니, 아는 사람은 다 메뉴판을 안 주네요?”

“아는 사람이라니 손님이라구. 기홍씨, 메뉴 다 외우지 않았어요?”

‘저는 둘 다 아닌가요?’ 이름도 다 알고 있으면서. 커피가 뭐 있는지는 다 알고 있다. 버릇이 들어서 그런지 메뉴판을 보고 싶었다.

“알아도 보면 안돼요? 칫.”

툴툴대고는 메뉴판을 대충 훑어 보았다.예가체프, 하라, 코스타리카, 케냐, 예멘… 설명도 있었지만, 설명 따위는 읽으나 마나. 방금 추억에 잠겼던 것을 떠올리곤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시켰다. 촌동네 냄새… 메뉴를 접어 제자리에 두고 커피 내리는 것을 기다렸다.

고노 드리퍼에 접은 필터를 넣었다. 그리고 커피를 갈았다. 간 커피를 드리퍼에 넣고 흔들어 살짝 수평을 맞추고는 드립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드립 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서버에 부어 뎁혔다. 그리고 그 물을 다시 드립 주전자에 부어 넣었다.

온도를 맞췄나보다. 이제는 서버에 커피를 담은 드리퍼를 올리고 물을 붓기 시작했다. 방울 방울 떨어지는 뜨거운 물. 커피가 충분히 젖자 시계 방향으로 주전자를 천천히 돌린다. 드립이 끝나고, 서버에서 뎁혀진 잔으로 커피를 옮겨 부어 나에게 잔을 건냈다.

냄새를 살살 맡고, 입에 머금고는 혀로 굴렸다. 어? 커피가 예전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커피가 맛이 없었는데 오늘은 맛있었다. 약간의 신맛과 고소한 흙냄새 속에 숨어든 톡톡 쏘는 식감…. 달콤 쌉싸름 매콤한 맛과 훈연향으로 마무리되는 맛. 맛이 돌아왔다.

“맛있어요!”

웃으며,

“그래요?”

드디어 로스팅하는 게 잡힌 모양이다. 어느새 사람이 그리웠던 건 잊고, 커피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막혔던 것이 풀린 것 같았다.

“여기 한동안 맛이 다 똑같았었는데 맛이 돌아왔어요.”

“요즘 손님들이 맛있어졌다고 하더라구요.”

잠시 후, 커피를 내려준 그분은 밥 먹으로 가고 아래 빵가게를 잠시 지키던 분이 올라왔다. 나는 커피 맛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했고, 요즘 손님들이 맛있어졌다는 이야기를 또 들었다.

“기홍씨, 다른 거 뭐 드릴까요?”

“예가체프 주세요”

이번에는 칼리타 드리퍼로 내렸다. 커피가 나왔고, 후루룩 들이켰다. 목 안 쪽부터 터졌다. 아, 이제는 안심하고 마셔도 되겠구나. 행복했다. 전에 r님 오셨을 때 맛이 잡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쨌든 커피 맛이 잡혔으니 다행이다. r님 생각하면 아쉽지만…

시간이 지나고 밥을 다 먹었는지 다른 분들이 돌아왔다. 돌아온 분과 잠시 이야기를 하던 중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것에 놀랬다. 이렇게 동문을 만나다니… 진주 이야기, 학교 이야기를 잠깐 했다. 그러다 7시가 넘어 계산을 하고 집으로 나섰다.

사람을 찾아서 왔다가 돌아온 커피맛에 마음이 즐거워졌다. 거기다 새로 들어온 분이 대학 선배라는 것까지 알게 되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오며 ‘진토닉’을 한 잔 하고 싶었다. 좋은 바텐더가 좋은 진으로 만들어준 진토닉을 한 잔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훗, 사람이 아니라 마음 달랠 술을 찾고 싶었던 거구나. 그래도 방금 마신 커피로 많이 달랬으니 오늘은 여기서 만족하자.

사람을 찾는 건 또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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