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해서 괜찮아

나는 아직 눈을 뜨고 있다. 본문

문화생활/책을읽고

나는 아직 눈을 뜨고 있다.

상큼한 김선생 2011. 4. 23. 00:37

훈련소에서 나온 이후 한동안 겁이 났다. 겁이 없어질 때 쯤 바빠지기 시작했고, 교통사고가 났다. 교통사고 이후에도 몸 제대로 안 추스리고 바쁘게 다녔다. 연주를 하느라 행복했지만, 내 생활 내 시간은 없어져갔다. 그래도 사람이 모이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게 좋았다.

사람이 모이면 모인대로 추접한 일들이 생긴다. 나는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많이 연결되어 있어 옆에서 지켜보고 마음 고생을 해야만했다. 실망에 실망, 그래도 희망, 희망에 실망, 실망에 절망, 그래도 희망. 집단으로 인한 마음 고생이 시작할 때 쯤 새로운 인연이 닿았고, 그 마음 고생이 정리될 때 쯤, 그 인연과 손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떠나보내고, 집단은 해체되어 소집단이 되고, 그리고 더 작게 쪼개졌다.

나는 내 마음을 내 분노를 숨기고 있었다. 겁이 없어진 게 아니라, 겁을 숨기고 살고 있었다. 아직도 숨기고 산다. 분명 깜깜한 건 아닌데, 보이질 않는다. 깜깜한 건 보이지 않는 걸 표현하는 걸까? 아니 분명 무언가 있다. 하지만 나는 볼 수 없다.

그래, 보고 싶지 않았다.

위협적인 집단, 무서운 사람, 뻔뻔한 사람, 당연한 듯 착취하는 자 속에 나는 나쁜 짓도 아닌데 숨어 도망쳐야 하며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자였다. 치유된 마음은 다시 거칠게 찢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손잡을 곳이 있다. 내 손을 잡는 사람의 내 아픔의 가시에 마음이 다칠까 힘들기도 했다.

잊자. 잊자. 그냥 버리자. 이거 잘 안된다. 글 쓰고 싶다, 표현하고 싶다, 외치고 싶다. 하지만 머리 속은 꽉 막혀있다. 뭔가 읽는 것도 쉽지 않다.

손잡을 이를 만나러 갔다. 단순하게 그이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참 행복했다. 편했다. 하지만 복잡한 머리 속이 다시 찾아올까 겁이 났다. 잊자 잊자 하면서 그이의 주변을 보았다. 책 한 권을 발견하고, 빌려왔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길게 길게 읽었다. 열하루…

독특한 문체, 익숙한 느낌의 상황… 나는 결벽증이었나? 아니면 의사의 아내와 비슷한 상황 속에 있다가 아직 충격에서 못 벗어난 걸까?

책을 다 읽고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의사의 아내는, 주체적이고 의지가 강한 인물이지만, 의사의 아내일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볼 수 있는 사람의 기준으로 호칭이 정해졌는데 의사의 아내는 관계에 대한 이름 뿐이다. 스스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는 중요하지 않다. 현상을 설정하고 관찰하기만 하는 이 소설은 폭력적이다. 하지만 따뜻하다. 우리는 왜 속에서 살지 않는다. 현상 속에서 관찰되고 관찰한다는 사실을 새삼 가슴에 박아준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머리 속이 다시 복잡해지면서 나는 다시 내 안으로 들어왔다. 한 번 내뱉고서야 빈 공간이 생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눈을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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