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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꿀에서 지슬

상큼한 김선생 2012. 11. 24. 15:12

갑자기 지슬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어색했다. 영화 제작한다며 소개하는 문구에 피난 오며 두고 온 돼지를 걱정하는 삼춘 이야기가 머릿속에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제목 잘 바꾸었구나." 만약 제목이 그대로였다면, 괴리감이 엄청났을 것이다.

지슬이라는 소재는 영화 전체에 잘 녹아들었다. 지슬의 어원은 지실(地實)이라고 한다. 감독에게 지슬은 어머니의 젖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땅은 여성이 된다. 어머니의 젖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내 아이 뿐이다. 젖동냥을 해줄 수는 있지만, 아이 외에는 누구도 굳이 사람의 젖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이 땅의 은유로 순덕, 어머니, 물허벅과 솥(솥은 시사회 문답 시간에 들었다)을 사용한다. 각각 사춘기(일제시대)가 지나고 갓 독립한 나라의 땅, 나오지 않는 젖을 쥐어짜듯이 주는 척박한 땅, 제주를 만든 신 설문대 할망이다.

1948년 4월 3일 이후 이 땅에 온 초대 받지 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변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땅을 짖밟을 지언정, 그들의 젖은 손대지 않는다. 대신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을 빼앗아온다.

돼지 고기는 손님을 대접하는 가장 큰 음식이다. 그 돼지를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게 아니라 빼앗긴다. 그들은 손님 대접만 받으려하는데, 조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그릇과 솥조차 빼앗아 마음대로 대접받는다. 땅을 파고, 마음대로 불로 태워버린다. 가나안을 빼앗긴 이들은 타인의 가나안을 그렇게 파괴한다.

영화는 줄거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에 집중 못했다. 상징주의 시, 인상주의 그림을 본 것처럼 위와 같은 느낌만 남아있다. 그 이유는 집중이 좀 힘들었기 때문이다. 오멸 감독의 전작을 본 사람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뽕똘과 용필이라는 두 캐릭터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두 캐릭터는 분명히 좋은 캐릭터다. 제주라는 땅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실성과 개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정말 좋은 캐릭터다. 이야기 속에도 잘 녹아든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환생을 해서도 그대로인가 싶을 정도로 전작 『어이그 저 귓것』, 『뽕똘』과 유사하다. 그래서 어디서 또 투닥거릴까 하는 기대가 더 컸다. 자꾸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전작을 본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그래서 나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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