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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

자르다

상큼한 김선생 2009. 6. 1. 16:58

좀 많이 잘랐다. 1년 넘게 손 안대고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 특히뒷머리는 15cm 이상 잘랐다. 그리고 중간 중간 많이 솎았다. 그랬더니 블로그 왼쪽의 —방금 찍은—사진처럼 됐다.

더워서 자른 것은 아니다. 묶었을 때 잔머리가 너무 많이 삐져나와 좀 지저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잘랐다. 자르는 김에 좀 잘랐다. 이제 이렇게해서 묶고 다니면 된다. 머리감고 말린 직후에는 단발처럼 보였다. 결국 곱슬머리가 강하게 드러나고 말아 이제는 살짝 바람머리 같아 보인다. 아무 것도 안 바르고 다니는데 ㅋㅋㅋ

문자를 보내니 —답은 아직 별로 안 왔지만—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냐 그러는 이도 있고, 이게 자른 거냐며 —류승범 같다고—더 자르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아버지는 별 반응을 안 하시고, 어머니는 그냥 이제 좀 시원해 보인다고 하시고, 할머니는 여자같다고 그러셨다. ㅋㅋㅋ

친척들의 반응은 어떨까? 몇 몇 삼춘들이 자꾸 자르라고 난린데 이렇게 잘랐으니, 이제 아무말 못하겠지, 그러면 나는 머리를 더 많이 기를 수 있다. 이런식으로 천천히 포기하게 만드는 것. 그거 참 좋다.

내게 머리를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다. 그 자유를 자꾸 억압하는 것이 너무 싫다. 나는 자꾸 머리를 자르라는 소리 때문에 저항하기 위해 더 꾸역꾸역 길렀고, 아무말 없을 때까지 기다려서 잘랐다. 내게 머리칼은 일종의 자존심이었고, 일종의 저항이었다.

나를 좀 억압에서 풀어달라는 부탁이었고, 내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머리 뿐만 아니라, 내 행동이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말 말라는 상징이었다. 내 행동이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제발 가만 두라는 상징이었다. 내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저항. 그리고 다른 것을 인정하라는 운동(이런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 웃기다)이었다.

결국 잘랐다. 하지만 억압을 받아들지는 않았다. 나는 변화할 수 있는 자유도 있고, 그것이 문제가 될 이유도 없다. 언제가 좋았든간에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것이다. 피해룰 주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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