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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

대화가 필요하지만…

상큼한 김선생 2009. 11. 27. 23:46

어제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 아니,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F카페에 가기로 했다. 제주여상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20분 여를 달려 신제주에 들어왔다. 카페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고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2~3분 쯤 걸어 F카페에 도착했다

바는 비어 있고, 테이블에는 손님이 두 팀. 그리고, 사장님 혼자였다. 언제나 그렇든 들어가서 난 바에 앉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기다렸다. 커피는 누구 주려고 갈아뒀다는 케냐 커피였다. 냄새부터 “난 시다”고 외치는 그런 커피였다

드리퍼는 하리오였다. 가늘게 물을 부어 커피를 적셨다. 잠시 뜸을 들이고, 가는 물줄기를 시계방향으로 살살 돌렸다. 커피를 추출하며 왜 서버에 용량 표시는 안 보이는 데 표시하냐 투털 투덜. 맞장구를 쳐주며 추출되는 커피를 주욱 지켜보았다

커피가 나오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프렌치 프레스로 한 번, 칼리타 드리퍼로 한 번, 서비스로 사과파이 한 조각 등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화는 길게 이어졌고, 오늘 따라 사장님은 말을 길게 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사장님의 질문.

“커피(에스프레소일 수도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를 어떻게 마시게 됐어요?”

육지에 있을 때였다. 처음에는 카페인이 목적이었다. 그러다 T카페에 바가 있는 것이 생각났다. 좀 힘들어서 바텐더를 찾을 때이기도 했기에 바에 앉기 시작했다. 바에 앉아서 커피를 맛보게 됐고 커피 맛에 반했다. 그러고 원두커피를 계속 찾기 시작한 것이다

커피 때문이 아니라 바에 앉고 싶어서 커피 마시러 가는 경우도 있다. 술 마실 체력이 안 되는 것 뿐 아니라, 음료와 말 모두를 하는 바텐더를 찾기도 힘들기도 해서 바리스타를 찾는 것이다. 대화와 음료로 풀어가는 걸 보면 F카페 사장님은 바텐더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오늘 진짜 말을 많이 했네. 제가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길게 하게 돼요.”

“네.”

짧게 대답하고는 싱긋 웃었다. 오늘 진짜 말을 길게 하셨다. 하긴 내가 말을 잘 들어주었다. 적절한 추임새도 넣었고, 적절한 반응도 보였다. 나 스스로도 말을 오래 들으면서 이게 듣는 기술이라는 건가 하고 놀랄 정도였다. 나중에는 뭐 내 말을 길게 했지만

가려고 일어나서 시간을 보았다. 몇 시 쯤 됐으려나? 6시 반? 7시 반이 넘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이렇게 길게 한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재미를 느꼈나보다. 계산을 하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라고 했더니 사장님은 “우리 가게 9시까지 해요.”란다. 큭!

카페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가며 생각을 했다. 내가 이 맛에 이렇게 커피 마시러 다니는구나.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거의 집에만 있는데도 가족고는 대화를 별로 못하니까… 어? 아, 집에 가면 어머니 아버지한테 말씀드려야겠다. 대화를 좀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며, 싹 잊어버렸다. 더군다나 들어오니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운동… 밥을 먹는데 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술을 드셨다. 생각도 안 났지만 결국 말할 기회도 없었다. 그러다 오늘 언성을 높이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오늘 친구에게 안 쓰는 폰을 줬다. 대신 밥을 얻어 먹었는데, 이 이야기를 하려고 친구한테 안 쓰는 폰을 줬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아버지가 그걸 왜 주냐며 언성을 높였다. 네 돈 주고 샀냐 자선사업가냐 등 등 비아냥댔다. 바로 내 속에서 터졌다

나는 다른 말을 할 틈도 없이 몰아붙였다. 아버지는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고 하길래 자식은 비아냥대도 좋은 존재냐고 몰아붙였다. 말투가 원래 그런 걸 몰랐냐는 아버지의 말에 그럼 내 성질 원 이런 걸 몰랐냐며 반박했다

결국 사과를 받았지만 “그래 아빠가 미안하다, 허” 어이 없다는 아버지의 태도에 더 화가 났다. 나는 다시 쉴 새 없이 아버지의 태도를 지적했고, 아버지는 또 부모한테 그게 뭐냐고 했다. 난 다시 자식은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냐고 반박했다

눈물이 났다. 대화도 못 하나? 속에서 어제 못 한 말이 길게 떠올랐다. 화나고 억울한 감정에 실어 어제 기억을 줄줄 흘려보냈다. 내가 대화를 하기 위해 밖에 나가야 합니까? 왜 집에서는 대화도 못 하냐고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나는 기운이 빠져 화를 누르고 방에 들어왔다.

하아,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 하고, 집에 들어오면 TV, 잠… 나도 잘 한 건 없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니깐… 그렇지만, 좀 심하다. 말을 꺼내면 항상 이런다. 대화를 못했다. 내 대화의 기술이 부족한 것만이 문제일까? 방금 그래놓고도 또 각자 할 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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