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해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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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커피향기

커피도 마셔본 사람이 마신다.

상큼한 김선생 2008. 12. 25. 11:46
<'커피 이야기'에 응모하는 글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커피도 마셔본 사람이 마신다. 감별능력 이딴 것 말하는 것 아니다. 취향은 겪어본 사람에게만 허락하는 것이라는 말.

나는 어릴 때 커피를 참 재밌게 마셨다. 밥 숟가락으로 커피 둘, 설탕 둘, 프리마 하나. 초등학교 4, 5학년 쯤에 그랬던 것 같다. 잔치집 커피라 부르는 그 달달한 커피에 반해서 똑같이 해 먹어봤다. 이때 커피는 단지 색깔있고 특이한 향의 달달한 음료였을 뿐이었다. 그냥 설탕물 처럼 밍밍한 것도 아닌게 부드러운 재밌는 음료. 물론 이때까지 원두커피? 말도 못 들어봤다. 커피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중,고등학교 때 즈음하여 원두커피라는 것을 처음 겪어봤다. 어머니께서 원두를 사용한 커피메이커라는 것을 구입하신 덕에 조금 마셔봤다. 향도 좋고, 맛도 부드러워 너무 좋았다. 단 것에 대한 흥미도 많이 없어진 시기이기도 했고, 커피 설탕을 사용해서 어줍잖게 달게 만들면 맛이 없어지는 것을 알고 그냥 따로 먹었다. 먹는 것에 대하여 흥미가 별로 없던 시기였으니 별로 커피에 대한 기억이 없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커피는 사교 용도였다. 입맛도 많이 예민해진 시기이기도 하고 폼 잡기 좋아하기도 했다. 이때 커피는 내게 자판기 커피와 캔커피가 전부였다. 카페 같은 데 가면 홍차나 허브차 같은 것 외에는 잘 먹지 않았다. 단 것도 싫었고, 그나마 먹던 자판기 커피와 캔커피도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먹었을 뿐. 다른 커피같은 건 생각도 안 해봤다. 아 가끔 테이크 아웃으로 제일 싼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맛도 잘 모른 채…

대학을 졸업하고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에스프레소 음료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영 입에 안 맞아 다시 아메리카노로 돌아오면서 커피에 맛을 조금씩 들이기 시작했다. 입안에 감도는 고소하고 달달한 커피 그 자체의 맛. 주변에서도 에스프레소를 먹는 사람도 보이며, 커피에 접근할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올해 초 처음으로 드립커피라는 것을 마셔봤다. 그냥 신기해서 먹어봤다. 커피프린스같은 것도 보지 않았고, 다른 것도 관심이 없었다. 처음 먹었을 때도 큰 차이를 못 느꼈다. 그러다 커피를 이런 일(나는 바를 좋아한다)을 계기로 깊게 마시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커피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 되었다. 수요가 적기에 좋은 커피가 잘 안 들어오고, 들어오더라도 배송비 부담이 커 커피를 비싸게 먹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좋은 커피를 먹고 싶으니 남들 좋은 커피를 먹여 커피 맛 알게 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카페를 운영하시는 단골 카페 사장님의 말에 감동을 받고 사람들에게 커피를 먹이려고 하게 되었다. 나도 좋은 커피를 더 싸게, 더 좋은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싶었고, 내가 항상하고 싶어하는 연대의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었기에 어떻게 변하나 지켜보고 싶기도 하니까…

나와 여자친구는 커피의 짠맛을 참 잘 찾는다. 커피를 조금씩 먹으며 내 입맛도 돌아왔고, 그 향을 즐기게 되어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강박적인 향 찾기가 아니라 재미로 하는 향 찾기. 이건 먹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먹어보면 알 수 있으니 한 번 찾아보자. 그러면 단 맛도, 신맛도 모두 조화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르면 인정하고 알 수 있는 것을 즐기다보면 주변이 보인다. 그게 커피다. 아니 커피만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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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소리가 들리는 상태에서 쓰다보니 정신이 좀 없네요^^;;